2024.03.06
개인이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일이 될까?

2024.03.13
내가 반드시 만들고 싶은 장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2024.03.20
디스플레이와 이미지를 페어링하는 기준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이미지에 어떤 디스플레이가 어울릴까?

2024.03.27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 내가 정말로 문제로 삼는 것은 무엇일까?

2024.04.02
디스플레이에 대해 내가 갖는 불만은 무엇일까? 왜 어쩔 때는 작은 크기의 화면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을까?

2024.04.24
나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안을 제공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2024.05.06
픽셀들은 서로 상호작용할까?


2024.05.29. 07:15 369 김밥에서
싱크를 포기하고 연관성 정도로 타협을 본다

맞는지...
그냥 밤을 새워서 약해진건가?
도저히 시간 안에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상관성 있는 풍경을 구현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어쨌든 픽셀 노이즈로 된 바다가 펼쳐져야 한다.
윤슬이 낀...(?)
또 픽셀이 떠다녀야 한다.
춤을 출 필요도 있다.
담배를 피울 때나 수업이 지루할 때면 늘 보게 되는 나무는
나무의 움직임은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2024.05.22. 수업필기

2024.05.21. 08:13 안국 가는 길에
1.
오늘은 새벽에 디스플레이들을 만졌다. 동그라미 고화질 TFT LCD를 트는 일은 성공적이었던 반면, 네모 TFT LCD를 다루는 일은 어려웠다. 그러나 사실 뭐가 성공이고 뭐가 실패인가? 단순히 화면을 틀 줄 아는 게 전부가 아닌데 말이다. TFT LCD는 왜 두 개가 직렬로 연결되지 않는걸까? 만약에 병렬로 만들면 다른 결과가 나올까? 그러고보니 무의식적으로 동그라미 디스플레이와 네모 디스플레이 모두 직렬로 연결을 해놨다. 반대로 동그라미 디스플레이를 트는 일에는 왜 문제가 없었는지도 갑자기 궁금해진다.

2.
TFT LCD를 직렬로 두 개 연결해서 코드를 넣었을 때, 어떤 요소에 의해서인지 화면이 움직이는 노이즈로 가득차는 순간이 있었다. 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냥 꺼버렸다. 나는 꼭 그 노이즈들이 픽셀 세계의 강물(?)처럼 느껴졌다.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노이즈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나에게는 무질서도를 연구하는 공학도 친구가 있다.

2024.05.29. 09:16 큰집에서
앞서 적은 기록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
나는 전선끼리 일렬로 연결을 해서 내가 디스플레이를 직렬로 연결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브레드보드에 꽂아서 연결했으니 직렬이 아니고 병렬로 연결한 것이 맞다.
동그라미 TFT LCD는 다시 틀어지지 않는다.
기존에 사용했던 Arduino nano esp32의 용량 문제로
Lolin D32 Pro로 보드를 바꿨더니 적응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Adafruit 사의 라이브러리도 사용할 수 없다.
그래도 tft_eSPI라는 뼈대 있는(?)
esp32 시리즈 전용 라이브러리가 있어서 적응만 하면 된다.
당장은 화면을 틀어도 노이즈만 나온다.
다만, 지난 번과 달리 매력적이지 않은 노이즈다.

2024.05.??. ??:?? ????
상상의 배치도 두 가지

24.05.18. 11:22 강남 가는 길에
어느 순간부터 초록을 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전에 내가 초록을 어떻게 보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마 rgb(0,0,255) 정도 였던 것 같다.
지금은 후지 카메라의 그것이 한 스톱 올라간 느낌...?
어딘가 메마르고 바랜듯한 느낌을 주고 그리운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아무튼 요즘 보는 초록은 조금 더 차분한 느낌이다.
지금 보는 것도 잘 설명을 못하면서 이전에는 초록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떠올리고 싶어한다.

2024.05.12. 20:48 083번 버스에서
앞으로는 작업의 과정도 저널에 적어둬야지...
하고 생각만 하는 날이 많다.
생각처럼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게 먼저라 글로 적는 것이 뒷전으로 된다.

2024.05.08. 수업필기

2024.05.08. 11:14 화백당에서
디스플레이로서 디스플레이를 보는 것은 어떤 일일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멋진 까닭이 될 수 있을까? 디스플레이 위의 픽셀의 움직임이 플레시몹 같은 게 될 수 있을까?

2024.05.06. 06:54 동패집에서
픽셀들은 실제로 서로 상호작용을 할까?
아니면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보일뿐일까?
만약 후자라면
프레임이 모여서 동영상이 되는 것과 같은 일이 될까?
한편 프레임이 동영상이 되는 일은 프레임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24.05.03. 15:42 일산 카페에서
아카사와 겐페이의 <사각형의 역사>를 읽다가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을 본다. 기분이 좋다. 맞은편 도로 위로 관목이 직선을 이루고 그 위로 조금 큰 나무가 곡선을 이루고 있다. 뒤로는 건물들이 살짝씩 보인다. 나는 디스플레이만 보았지 프레임은 본 적이 없었다. 왜 화면이 네모난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앞에 사람이 와서 정신이 산만하다. 디스플레이와 픽셀이 왜 네모난지도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24.04.24. 14:54 화백당에서
나는 아무래도 내가 모든 것들을 자랑하고 싶은 것 같다.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다양한 기기들을 모은다면 나도 모은 것들을 펼칠 명분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2024.04.24. 수업 필기

2024.04.24. 마친보람 1차 그룹크리틱

2024.04.24. 12:36 이도방에서
상상
픽셀 달리기를 위한 트랙

2024.04.18. 더블그라스에서
가볍고 빠르게 평소에 보는 재료들로 새로운 용도를 만들어내는 게 인상적이다.

내가 작은 디스플레이를 활용하는 일도 일상의 것을 더 나은 혹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은인 것 같다.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제안하는 일이 거창하고 깊은 통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실천들의 집합이 되면 좋겠다.

2024.04.07. 21:54 큰집에서
상상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는 픽셀 비평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는 하드웨어 비평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는 디스플레이 비평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는 흐려서 깊어지는 것의 비평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는 투명함의 비평가가 되기로 결심햇습니다!
반투명 디스플레이 위에 접착제 영상을 띄우는 일은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역할을 합니다!

2024.04.06.17:19
나의 탐험은 방구석에서 이루어진다.

2024.04.06.08:01
상상
나의 전시장에는 매끄러운 아름다움을 담은 글 한 편과 실제 여정을 담은 저널이 담겨있으면 좋겠다.

2024.04.03. 수업필기

2024.04.02. 23:06 집으로 가는 길에
아주 큰 방에 아주 작은 디스플레이. 필요한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내가 작은 화면 자체에 매료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아이팟 클래식으로 영화를 본 경험 때문일까?

2024.04.02. 23:06 집으로 가는 길에
특정 디스플레이가 어떤 그래픽이 어울리는지 고민하는 것은 작업의 영역이지 리서치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디스플레이에 내가 가진 불만들의 정체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러고보면 어쩔 때는 아주 작은 화면으로도 충분한데, 이것이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 같다. 이것을 좀 더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디스플레이를 보기 좋은 환경을 탐구하는 일로 변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나는 좋은가…? 그럼에도
매체에 제한을 두지 말자.
매체에 제한을 두지 말자.
매체에 제한을 두지 말자.

2024. 04. 02. 15:49 레어 바이크에서
기술이라고 하면 나는 당연히 전자기기의 것을 떠올리는데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쓰는 말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주 구체적인 사례의 관찰에서 재밌게 가볍게 작업을 잘 만들어가시는 것 같다. 되게 조용히 가볍게 생각을 하며 조금씩 많이 작업을 하시는 것 같다.
뭘 대단하게 해야하고 그런 생각이 없고 자기가 평소에 가진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많이 구현해내는 느낌이다.
수동식 재봉틀을 보면 전자기기에 대해서도 옛날 것을 구해다 쓰는 것이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2024. 04. 01. 11:48 큰집 가는 길에
디스플레이도 재료라고 인식되어야 한다. 물감이나 종이 인쇄방식처럼 원하는 그래픽을 원하는 질감 또는 형태를 지닌 디스플레이 위에 출력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2024.03.27. MMCA에서
권병준 작가와의 대화

헤드폰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들으려면 원하는 위치에 가야하는 헤드폰이라니…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듣는 게 주변 분위기와 안어울리는 경험에서 시작을 했을까? 어쨌든 특별하고 아무도 만들 생각을 안하는 헤드폰을 만들 생각을 한 게 멋지다고 생각한다.

난민 문제에서 출발해 낯선 존재로 여겨질법하다는 이유로 로봇을 만들었다고 한다. 로봇이 관객에게 손을 건네며 인사를 하는 것이 낯선 존재를 경험할 때의 우리의 반응이 어떤지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했다.
cf) club Golden flower, 권병준

권병준 작가는 밴드로 시작해 원하는 악기를 제작하다가 원하는 소리를 만드는 일로 넘어가 나아가 헤드폰을 만들고 로봇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동일한 연장선 속에서 계속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대학원 작업의 주제는 글씨 쓰는 소리를 유추해서 글씨를 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소리에 대한 집착에서 나올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자기 연구를 위한 도구들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입체음향(소리가 나는 물리적 위치가 고정되어 있는 헤드폰)이 적용된 헤드폰은 꼭 메타버스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기어…
그런데 기술을 쓰는 작업자는 항상 원하는 만큼 혹은 계획했던 것 만큼 구현하지 못한 채로 전시가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원래는 무엇을 더 했어야했는데 혹은 작업을 고치러 계속 전시장을 들렀다는 그의 얘기를 들으니 나의 지난 날이 생각이 났다.

2024.03.27. 23:46 동패집에서
일전에 AI 강연에서 미디어 아트 작업자가 작업을 설명할 때, 기술적인 부분을 하나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나에게 그의 작업관(?)과 작업에서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설명들이 그를 깔끔함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 나는 그에게 기술적 난항을 겪은 적은 없냐는 질문을 던지고 그가 겪은 어려움을 생생히 설명해주던 것이 기억난다.

오늘 권병준 작가의 작업 얘기 속에도 작품을 만든 기술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도 그의 얘기는 충분히 솔직하고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에서 출발하여 로봇까지 도달한 그의 여정이 상세히는 몰라도 납득이 갔다. 권병준 작가의 작업은 난민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그들의 목소리를 헤드폰으로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혁명적인 작품인 이 헤드폰으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그의 생각만큼 반응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청각적인 것만으로 불충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난민과 같은 낯선 존재인 로봇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로봇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굳이 기술적인 설명 없이도 그가 만든 로봇들은 나로 하여금 절실한 감정을 전달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두 사람의 차이에 대해서 내가 좀 더 선명히 얘기해볼 수는 없을까?

오늘 내가 권병준 작가의 설명 속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두 가지는 헤드폰을 만들게 된 계기와 로봇을 만들게 된 계기다.
위에 적어놓았듯, 로봇을 만든 계기에 대한 설명은 근사하다. 그것의 출발은 기술이 아니라 개인적인 아쉬움에 있었다.

헤드폰에 대해서는 좀 더 찾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그에게 헤드폰의 계기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는 합동 공연을 할 때 소리가 섞이지 않는 방법을 고안하는데서 출발했다고 했지만 헤드폰에 대한 그의 애정으로 미루어 보았을 떄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하나 신기한 것...? 혹은 위로가 될만한 것...?은 그가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독특한 헤드폰을 개발한 것처럼 나 또한 화면(혹은 영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디스플레이를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그의 암스테르담 유학기 또한 매력적이었는데 그는 글씨 쓰는 소리로 유추하여 글씨를 써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의 소리에 대한 집착이 실로 아름다웠다. 그가 유학기 동안 작업했던 과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내가 PaTI에 와서 코딩과 아두이노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이런 것들을 공부하면서 내 안의 한 부분을 찾은 것 같은 까닭이다. 나도 얼른 나의 질문을 좀 더 다듬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2024. 03. 27. 18:00
새로운 질서 수업 중에
해상도 def. 힘을 써야하는 정도.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해상도에 적용된다면?

2024.03.27. 수업필기

2024.03.22. 17:46 지혜의 숲에서
디스플레이를 찾고 그에 적절한 이미지를 찾는 것과 이미지를 찾고 그에 적절한 디스플레이를 찾는 일은 서로 다르다. 기술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을 만나 볼 필요를 느낀다. 그들의 작업 과정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2024.03.20. 05:56 동패집에서
“요즘 과학 분야의 학술 리서치가 주로 이런 식이에요. 제가 직접 그룹 연구의 선두에 있는 문제에 대해 깊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리서치란 무엇인가?> 중에서

존 내시 선생님은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에 재직하던 시기에 같은 동네에 살며 몇 번 뵈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내쉬 선생님의 삶을 고증한 영화로, 흥행에도 성공해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영화로서는 흥미롭지만 현대수학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린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이전 세대 수학자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특정 집단이 공통으로 가지는 고정된 견해) 인물을 재생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천재인데 외골수, 의사소통 능력은 부족하지만 순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전인류적 성과를 내는 영화 속 천재 수학자는 현대수학자 모습과 차이가 있다. 존 내시 선생님은 천재성이 명백한 분이었지만 현대수학자는 골방의 책상에 앉아 혼자 몰입하는 모습과 다르다. 오늘날 논문은 대부분 공저자 형태로 발표된다. 문화의 변화라기보다는 사회 여건이 무르익으면서 인류가 추상적 대상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방식에 이르렀다. 추상적인 대상에 관해서도 수학자들이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됐다.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라마누잔은 인도에서 영국에 손편지를 쓰는데, 발신과 수신에 걸리는 시간, 답장을 주고 받는 시간을 감안하면 단 1초 사이 지구 반대편 상대방과 이메일이 오가고, 낮밤도 없이 화상으로 대화하는 모습은 혁명적이다. 현대수학의 집단지성을 나는 '조용한 혁명'이라 부르고 싶다.
<매일 경제의 허준이 교수 인터뷰> 중에서

작업에 있어서 점점 개인이 흐려지는 것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허준이 교수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는 현대수학은 집단지성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이 있다. 이전의 존 내시와 같은 천재 수학자의 모델에서 벗어나 현대 수학자들은 실제로 누가 무엇을 해결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정도로 서로 협력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내용에 매료되었는데, 예술계에서 그런 생각이 가능한가?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어제는 Y와 필립 파레노의 《보이스(Voices)》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Y는 작가가 사회적 맥락을 잘 파악해낼 정도로 명석한 사람인 한편 짙은 상업성을 띈다는 점, 작가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닌 자본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부려 작업이 이루어진 점 등을 들어 강한 반감을 표했다. 나는 작가가 다른 사람을 부려 작업을 해내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오래 공부한 Y는 그렇지 않다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Y는 리너스 반 데 벨데의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를 설명해가며 작가가 직접 만드는 작업의 근사함을 설명해줬다. 종이 박스로 직접 만든 차, 직접 만든 소품들로 이루어진 스튜디오에서 로케이션 등의 사용없이 촬영한 영화… 나도 그것을 직접 보고 싶을 만큼 근사하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전시에 가보진 못했지만 이 작가의 전시 크레딧 같은 곳에는 같이 협업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을까? 나는 여전히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매료되어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나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현대 수학자들의 방법론이나 개발자들이 오픈 소스로 코드를 공유하는 일과 나의 생활은 아직 너무 멀다.

2024.03.15. 15:34 리움미술관에서 필립 파레노를 보며
1.
움직이는 조명등을 3개 설치하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작품을 보면 조명은 각각 다르게 움직이고 전등 갓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는 순서가 다르며 설치된 높이도 제작각이다. 가운데 조명은 내가 보는 시간에는 햇빛의 영향을 받아 제일 가까이서 볼 필요가 있다. 햇빛으로 인해 대비가 약해져 그림자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오는 중얼거리는 소리와 조명등이 움직이는 소리(?) 혹은 조명등을 위한 소리 그리고 공간의 피아노 소리 등이 서로 어울려 어느 순간 어디서 소리가 나오는지도 헷갈려 주술에 걸린 기분이 드는데, 그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2.
소리에 어울려 공간에 떠다니는 물고기 풍선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유리창에도 무언가 특수 코팅을 한 것 같다.
3.
작품이 궁금해서 가까이 가려고 하면 자꾸 멀리서 보라는 제지를 받는다. 나는 작품과 1M 정도의 거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이럴거면 바리케이트를 쳐야하는 거 아닌가, 인터넷 세상에서는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멋진 작품처럼 보여야하기 때문일까? 하는 짜증이 들었다. 동시에 작가들도 관객이 자기 작업 위에서 멋진 사진을 찍는 것을 분명 알고 있을텐데, 여기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하는 짜증이 들었다.
4.
이 작가는 소리를 참 잘 쓴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공간 어디에 있어도 소리가 내 곁을 스치는 느낌을 받는다. 소리가 희미해서 깊어진다는 게 이런 걸까?
5.
석양빛 만(灣), 가브리엘 타드의 지저 인간: 미래 역사의 단편
시트지에 무슨 이렇게 어려운 이름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유머일까..? 그러나 유리창 시트지를 작업이라고 한 것은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작업이 공간에 설치되는 것을 상상하며 세부적인 요소를 조정한 결과가 작업이라는 건 전시를 진행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소품들이 연출의 일부 요소라고 생각한다. 항상 연출의 이름만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그런 점이 이런 것을 근사하다고 느끼게 해준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왜 근사한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도 전시를 한다면 이런 요소를 활용하고 싶다. 동시에 공간의 분위기를 시트지로 연출해내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납득되고 받아들여졌는지도 궁금하다. 별로 그렇게 안 생각해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
oled 디스플레이를 활용하지 않고 LED를 활용해서 저런... 깨진 디지털 그래픽? 노이즈?를 보여주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레이스드 방식 같은 것이 물리적 거리로 재현된 것 같아 더욱 멋지다. 이미지가 가진 특성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훨씬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또한 두 개의 LED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도 멋지다. 나아가 유리창에서도 겹처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훌륭하다.
7.
4대씩 모여서 춤을 추는 기계의 정체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다. 단순히 조명을 움직이는 용도가 전부가 아닐 것 같은데, 이것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이며 무엇을 말하는걸까? 이것도 막의 데이터를 활용해서 움직일까?
8.
1층을 보고 나니 나는 지쳤다. 위에 올라가서 남은 작품들을 훑고 지하로 내려왔을 때, 내가 지금 작업에 감탄한 것인지 작업의 규모에 감탄한 것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막을 보며 여러 번 전시장을 들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4.03.15. 03:29 동패집에서
모니터 화면의 주사율이 행마다 전부 다르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런 것은 특별한 상황의 모션그래픽을 위한 디스플레이같은 게 될 수 있을까?

2024.03.17. 13:46 을지로 가는 길에
수복을 위한 기계는 어떤 모습일까

2024. 03. 19. 10:34 083을 기다리면서
내가 광학기기를 만들면 그건 어떤 장치가 될까? 광학기기란 무엇일까?

2024.03.20. 13:31 큰집에서
장치는 특정한 목적을 지녀야 한다.
디스플레이는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장치다.
디스플레이 장치의 목적은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
다른 건 아직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의 작업이 매끈한 디스플레이에 올라가는 것은 충분한 일이 아닐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리움미술관에서도 그 사례를 보았다.

2024.03.25 11:09 083번 버스에서
Jpeg 이미지를 만들 때 패턴을 형성하는 알고리즘은 조작해 나만의 패턴으로 된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2024.04.02. 23:06 집으로 가는 길에
아주 큰 방에 아주 작은 디스플레이.
필요한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내가 작은 화면 자체에 매료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아이팟 클래식으로 영화를 본 경험 때문일까?

2024. 04. 01. 11:51 큰집 가는 길에
화면은 실제 물리적 위치에 있고 디스플레이가 그걸 비추는 카메라 같은 게 될 수는 없을까? 그래서 디스플레이의 위치가 변경되면 면 속 대상은 그대로 있고 디스플레이라는 카메라의 화면이 바뀌는 것. 대상이 실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가능할까.

2024.03.13. 수업필기

2024.03.13. 02:40 동패집에서
아두이노를 배우면서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작년 한배곳 졸업 전시의 멋진 집기들을 보면서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왜 디스플레이는 집기가 되기 어려울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멋진 작업에도 불구 그것은 아이패드나 아이맥을 통해서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각자 작업에 맞는 집기를 사용한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전시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도 전시의 성격에 맞는 것이 된다면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우리에게 디스플레이는 화질이 선명한 최신 디스플레이 혹은 레트로 감성을 전달하는 아날로그 디스플레이 두 가지로만 인식될 수 있을까? 이것을 확인하러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온 적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led를 활용한 디스플레이나 정체는 모르겠지만 좀 다른 디스플레이를 사용했지만 어쩐지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경력이 짧은 만큼 나는 앞으로도 부지런히 전시장을 다니며 다양한 디스플레이들을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난 학기 동안 어설프게 디스플레이를 공부하며 디스플레이 발전 과정 속에 다양한 종류의 디스플레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한 편, 꼭 TV나 모니터만이 디스플레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때로는 1픽셀만으로도 필요한 모든 정보값을 전달하는 한 편, 아무리 선명한 디스플레이라도 공간의 분위기와 안맞는 작품이 상영된다던가 하는 이유로 충분치 않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디스플레이를 직접 만드는 것은 가능할까? 그것을 만든다면 그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될까? 특정 작업에 어울리는 디스플레이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될 수도 있을까? 혹은 기계를 만져서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까? 나는 궁금하다.

2024.03.13. 02:15 동패집에서
그간 적은 메모를 보면 생각보다 많이 적지 않았음에 반성하고 생각보다 질문만 있고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반성한다. 당장은 앞의 질문들에 답을 찾는 시간을 가져야할 것 같다.
키워드는 ‘디스플레이’… 질문을… 개인이 디스플레이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일일까?로 가져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2024.03.13. ??:?? ???
이 수업에서는 어디까지가 디스플레이고 어디부터가 디스플레이일까?와 같은 질문을 가져가면 어떨까?

2024.03.12. 17:21 화백당에서
나는 왜 디스플레이랑 모니터를 다른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실제로 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알아봐야겠다.

2024.03.??. ??:?? ????
루루가 희미한 것에 대해 모니터와 닮았다고 얘기해주는 것은 머리로는 말이 되지만 어쩐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이 화면을 디스플레이로 생각하는 것과 모니터로 생각하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을까..?

2024.03.20. 13:07 큰집에서
디스플레이(Display)의 어원은 라틴어인 Displico 혹은 Displicare로 그 의미는 '보이다', '펼치다', '진열하다' 등이다. 가장 흔히 쓰이는 의미는 '전시 및 진열'이지만, 전자공학에서 뜻하는 디스플레이는 '표시 장치'라는 뜻으로서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화면에 출력하는 표시 장치를 의미한다. 즉, 디스플레이는 보여주어야 할 '정보'가 디스플레이 장치'를 거쳐 우리 눈을 통해 인지되게 하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장치는 컴퓨터 출력 장치의 하나로 컴퓨터의 처리 결과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텔레비전과 같은 화면에 문자나 도형을 표시한다. CRT, 액정,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따위가 있다.
모니터(monitor)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는 한편, 소리를 듣거나 영상을 볼 수 있는 장치로 정의되기도 한다. 라우드스피커, 헤드폰, 스크린 따위가 있다.

2024.03.20. 13:11 큰집에서
나는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화면에 출력하는 표시 장치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일전에 마친보람 면담에서 나눴던 얘기처럼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디스플레이의 핵심인 것 같다.그러면 '데이터'와 '표시장치'란 무엇인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데이터
인간 또는 컴퓨터를 비롯한 기기나 시스템에 의해 행해지는 통신과 해석, 처리로 형식화된 사실과 개념, 명령을 표현한 것.
표시장치
컴퓨터의 출력 장치의 하나. 컴퓨터의 처리 결과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텔레비전과 같은 화면에 문자나 도형을 표시한다.
* 표시장치와 디스플레이는 동의어인가?
표시(representation)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숫자, 문자 혹은 기호를 사용하여 특정한 데이터 요소값을 표현하는 방식.
표시(indication)
일정한 정보와 상태의 표시로 경보 관리와 관련된 부분은 제외한다.
장치
1. 특정한 목적을 가진 기계적, 전기적 장치.
2. 컴퓨터 내에 있거나 컴퓨터에 붙은 물리적 장치의 부분. 특히 컴퓨터에 온라인(online)으로 연결된 음극선관(CRT)과 모니터, 단말기, 인쇄기, 디스크, 테이프 등의 주변 기기를 가리킨다.

2024.03.12 07:39 동패동 자취방에서
내가 하드웨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마 생각하는 손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하드웨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대입시절 철학과를 지망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일 원형의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드웨어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계 덩어리가 그 자체로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2024.03.11 마친보람 1차 크리틱

2024. 03. 08. 19:31 삽다리 사거리에서
브라운관, crt 모니터를 4대나 쓰면서 디스플레이에서 서로 다른 질감과 서로 다른 1픽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사실 우스운 일이다. 개미 똥 만큼의 차이가 느껴질까? 나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공부하면서 역사속에 다양한 디스플레이 기술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도 소견이 좁아 저런 미세한 차이를 알아주길 바랐다. 이것은 문제다.

수업 평가 중에서 발췌
1.
일정한 범위 안에서 조금씩 삐뚤빼뚤 움직이는 글자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대한을 어딘가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2.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모든 사소한 요동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 그리고 생각한 것을 향해 몸을 움직이고 재생산하는 실행력(체력) 이 두 가지가 대한이 가진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3.
다만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자료를 본 것들을 바탕으로 대한만의 주제 해석력을 조금 더 키운다면 더 멋진 작업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4.03.06. 수업필기

2024.03.05 00:46 동패동 자취방에서
1.
영상이 거짓이라는 것은 대전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테이크를 여러번 돌려서 찍은 영상이라는 것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예를 들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작품 설치를 여러 번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지쳐가면서 얻는 무언가도 있을 것 같다.
2.
구봄씨가 얘기해준 것이 마음에 닿는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런 것도 있구나. 나쁘지 않네.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걸 넘어서 관객한테 나아갈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작품이 관객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원하는 바가 훨씬 잘 전달될 것이다.

2024. 02. 28. 13:22 경복궁역에서
내가 ai와 친해질 수 있을까? 수동식 카메라를 사고 싶었던 이유까지 엮어서 읽기와 쓰기의 차이에 대해 적어볼 필요가 있다.

2023.03.15. 13:56 두성집에서
카메라에 대해서도 열받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내가 사진을 찍으면 그것이 나의 의도 밖의 것이 항상 작용한다는 것이다. 손떨방 기능에 렌즈는 왜곡이 보정되고 색수차도 보정되고 카메라 센서가 이미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의 색보정도 일어난다. 물론 raw 촬영이나 log 촬영을 하면 이런 부분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회사 별로의 카메라의 색감이 있다는 부분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한 때는 이런 게 몹시 불만스러워 필름카메라를 구입해보고 싶엇으나 nikon f의 민트급 중고를 국내에서 구매하기는 내 예산도 여건도 영 쉽지 않았다.
cf)
카메라 루시다

2024.03.15 04:15 동패집에서
나는 어쩔때 주도권이 필요하다고 느낄까? 그러니까 내 말은 어느순간에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채로 일이 진행됨에도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고 느낄까?

2024.03.13 22:38 집으로 가는 길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주체성이다. 아직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어서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나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과 같은 작품을 들어 비유할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도시에서의 삶에 지치고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처가에 눌려사는 그가 주체성이 상실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이상의 <날개> 속 아내에게 의존하며 생활을 꾸려나가는 '나'가 비참한 것 역시 주체성이 상실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자동으로 적용되는 기술(HDR, 자동 보정, 인물 사진 촬영시 나오는 블러)에 불만을 느낀다. 그것은 그 기술이 상황에 적절하지 않을 때 생기는 짜증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제어할 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불만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다. 나도 내가 모든 기술을 100% 이해하고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이 나에게 제공하는 선택지가 사용하는 것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주체성이 상실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각종 블로그 플랫폼을 싫어하는 것, 디지털 카메라를 불편해하는 것, 지금 쓰고 있는 맥 OS Sonoma를 싫어하는 것, 카카오톡이 싫은 것은 모두 이런 맥락에 있다. 혹은 누군가 나에게 "너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혹은 "그냥 이렇게 하면 돼."라고 얘기할 때 상황이 어떻든 반감부터 드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내가 ai와 친해지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작동의 메커니즘을 모른 채로 ai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나의 주체성을 앗아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전시를 보며 디스플레이 역시 주어진 것만을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 출발했다. 이런 생각으로 내가 만들 장치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2024.02.19. 04:19 동패동 자취방에서
1.
제임스 카메론이 원하는 기술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페를린 노이즈에 대해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원하는 노이즈 효과를 구현하기 위한 여정은 어떤 식으로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면 얻어갈 게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여정은 어디서 얻어낼 수 있을까?
2.
내가 코딩 같은 것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유는 학부 시절 논리학을 공부한 것이 큰 것 같다. 당시에는 논리학이 재밌고 흥미를 느끼는 한 편, 이걸 어디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허망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는 답을 찾은 것 같다. 내가 디자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코딩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도 코딩을 하는 사고 방식에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사고 방식을 알려줄 방법은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24.02.10 19:22 나선도서관에서
이해할 수 없어도 좋은 것이라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고 터무니 없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대해서는 소리와 화면 모두 때깔이 너무 좋아서 다큐멘터리에서 이게 어떻게 가능했지? 하는 궁금증이 드는 한 편 이런 것은 어떻게 편집이 가능할지도 궁금했다. 우리 시대에 화면을 쓴다는 것은 이런 일(하드웨어와는 상관없이 내용이 중요해지는 일)이 되어야 할까? 그간의 나의 생각이 너무 평평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 될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시작은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싶다고만 얘기할 수 있다.

2024. 01. 13. 23:36 합정 고깃집에서
크리스 마커와 백남준.
백남준과 크리스 마커.

2023.12.7. 17:19 지하철에서
봄학기에는 1픽셀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평소 픽셀이 단위라는 게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픽셀의 크기는 PPI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픽셀의 크기는 모니터의 PPI에 따라 항상 바뀔 수 밖에 없다. 단위라고 하면 어딘가 절대적인 속성을 가져야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닌게 반직관적으로 느껴지고 불만이었다. 공대생 친구한테 이상하다고 말해도 전혀 아니라고 내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이 분야에 배경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1픽셀을 구현하거나 픽셀 관련 자료들을 읽거나 다양한 픽셀들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내가 얻은 것은 글이나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나의 관객들이 차라리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않아도 무언가 중요한 게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글자에 색을 매핑한 프로그램 위에 글을 쓰고 대문자, 소문자, 전체 글자, 전체 입력, 블링크 커서로 나눠서 다양한 모니터 위에 픽셀의 명멸로 그것이 나타나게 했다. 키보드 소리로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 전달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