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봄씨. 그간의 자료들을 드립니다. 기존에는 작업 노트를 긁어모아 드린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보기가 어려운 자료였을 거 같아요. 하여 전시 때마다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적었던 글과 사진을 드립니다. 추가로 혹시 존재를 잊었을까봐 자료들이 있는 공유 폴더도 같이 드려요. 파란색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2023 봄 전시 때 D의 기록 소개글
망망대해 속에서 발견한 등대의 한 줄기 빛을 따라가듯 디지털 단위인 픽셀(Pixel)을 연구하던 픽셀연구자 D가 디스플레이 위에 쓴 일기. 유니코드(Unicode)로 치환된 D의 일기는 색채 정보로 매핑되어 색의 변화로 나타난다. 디스플레이 별로 나타나는 화질의 차이나 외형의 차이는 그의 픽셀 연구 과정을 짐작하게 해주고, 굳이 읽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그가 느낀 것들을 짐작해볼 수 있다.
2023 가을 전시 때 D의 기록 소개글
1픽셀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픽셀이 단위라는 게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픽셀의 크기는 PPI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픽셀의 크기는 모니터의 PPI에 따라 항상 바뀔 수 밖에 없어요. 단위라고 하면 어딘가 절대적인 속성을 가져야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닌게 불만이었어요. 공대생 친구한테 이상하다고 말해도 전혀 아니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저는 이 분야에 배경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1픽셀을 구현하거나 픽셀 관련 자료들을 읽거나 다양한 픽셀들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제가 얻은 것이 있어요. 그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않아도 무언가 중요한 게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자에 색을 매핑한 프로그램 위에 글을 쓰고 대문자, 소문자, 전체 글자, 전체 입력, 블링크 커서로 나눠서 다양한 모니터 위에 픽셀의 명멸로 그것이 나타나게 했어요. 키보드 소리로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 전달되길 바랐고요. 픽셀연구자 D가 받은 인상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한창 바쁠 때였다. 의무적인 것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낮에 보낸 메일에 회신이 왔다.메일의 말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한! 정리 감사합니다. 오늘 달도 꼭 보시고요."
나는 이상했다. 안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사무적인 메일의 맺음말로 달을 꼭 보시라 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 말을 듣고 그날은 달을 꼭 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내가 더 이상했다. 이후에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궁금해 그날의 달이 놓치면 14년을 기다려야 하는 슈퍼블루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날 본 달은 유독 마음 속에 파랗게 파랗게 남아있다.
나는 버스를 탈 때면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움직이며 지하철을 탈 때에는 출발 시간과 도착시간, 빠른 환승과 빠른 하차, 내리는 문 방향, 목적지와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를 확인한다. 사람이 붐비는 전철 안에서는 내려서 내가 해야할 할 일들 혹은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며 버거워 하곤 한다.
그런 날들을 쌓으면 달을 보는 게 생소해진다. 그러면 인사치레 같은 맺음말에도 과민하여 달을 꼭 보는 것이다.
갈수록 요일을 까먹는 날이 잦아진다. 그렇다고 요일을 알기 위해 핸드폰을 켜는 일은 어딘가 더부룩하다. 옆으로 누워있는 통장사본.jpeg 파일을 회전시키자고 포토샵을 켜는 일과 같다고 할까? 과제 촬영하는데 시네마 캠에 렌즈 세트와 트라이포드 세트, 거기에 리그까지 빌리는 일과 같다고 할까? 일기를 쓰자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일과 같다고 할까? 200 dpi에 png로 스캔하면 될 이미지를 굳이 400dpi에 tiff로 스캔하는 일과 같다고 할까?
언젠가 지워질 수성페인트를 조금이라도 오래 남기자고 도장면 별로 적합한 페인트를 찾으려 페인트사 기술지원팀과 매일 전화를 주고 받는 일과 같다고 할까?
책상 한 켠에 두고 눈길 한 번으로 요일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날짜와 시간 말고, 요일만.